외로운 장모를 위로하러 간 날 1
외로운 장모를 위로하러 간 날 1
겉으로 보기에는 남부러울 것 없는 맞벌이 부부였다.
아내 수진은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였다.
병원에서도 계산이 빠르고 일 처리가 똑 부러진다는 말을 자주 듣는 사람이었다.
나 역시 직장생활을 하며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안정적인 직장도 있었고 경제적으로 크게 부족한 것도 없었다.
남들이 바라보면 별문제 없는 부부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우리 부부의 침실은 어느 순간부터 외로운 섬처럼 변해 있었다.
수진이 성적인 부분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문제는 현실이었다.
대학병원의 3교대 근무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됐다.
출근 시간이 계속 바뀌었고 응급환자가 몰리는 날이면 퇴근할 때 이미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상태였다.
그날 밤도 마찬가지였다.
침대에 누운 수진이 다시 내게 등을 돌렸다.
“여보, 오늘 응급이 너무 많아서 진짜 힘들다.”
잠시 침묵하던 수진이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미안해.”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몸이 힘든 사람에게 부부관계를 강요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서운하지 않은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우리 둘은 아직 30대 중반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부부 사이의 분위기를 되살려보고 싶었다.
조명을 바꿔본 적도 있었다.
마사지 오일을 준비한 날도 있었다.
일부러 둘만의 시간을 만들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번번이 돌아오는 것은 피곤하다는 대답이었다.
결국 나는 내밀었던 손을 조용히 거뒀다.
“알았어.”
그렇게 대답하고 천장을 바라봤다.
마음속에서는 서운함이 조금씩 쌓여가고 있었다.
나 역시 밖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왜 부부 사이에서조차 매번 내가 부탁하고 매달리는 사람처럼 되어야 하는지 속상했다.
내가 원했던 것은 단순한 욕구만은 아니었다.
적어도 당시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내에게 여전히 남자로 보이고 있다는 느낌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거절이 반복될수록 자존심까지 조금씩 상했다.
결국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침대에서 조용히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 속에는 지쳐 있는 내 얼굴이 보였다.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얼마 전 처가에서 마주쳤던 장모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장모는 50대 중반이었다.
오래전에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뒤 혼자 지낸 시간이 길었다.
평소에는 수수하고 친근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장모에게서 단순한 가족 이상의 성숙한 여성의 분위기를 의식하고 있었다.
처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는 나 자신에게도 놀랐다.
아내의 어머니였다.
내가 그런 시선으로 바라봐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죄책감도 들었다.
그래서 그 감정은 철저하게 혼자만의 상상으로 묻어두려고 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오랜만에 수진과 휴일이 겹쳤다.
둘이 거실에 편하게 누워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때 수진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화면에는 두 글자가 떠 있었다.
‘엄마.’
수진이 전화를 받았다.
“엄마?”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장모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술을 마신 것 같았다.
목소리가 젖어 있었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떨렸다.
“수진아.”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장모가 말했다.
“나 진짜 서러워서 이 집에서 더는 못 살겠다.”
수진의 표정이 바로 심각해졌다.
몇 년 전부터 처남 부부가 장모의 집으로 들어와 함께 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서로 의지하면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함께 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문제가 하나둘 생겼다.
장모는 며느리와의 사소한 갈등을 이야기했다.
아들 내외가 자신을 은근히 눈치 주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자기 집인데도 오히려 자신이 얹혀사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했다.
평소에는 그런 속내를 거의 드러내지 않던 사람이었다.
동네에서도 수더분하고 사람 좋은 사람으로 통했다.
그런 장모가 술에 취해 딸에게 울면서 하소연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쌓아둔 외로움과 서러움이 한꺼번에 터진 것 같았다.
수진은 한참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엄마, 일단 진정해.”
그리고 말했다.
“내가 저녁에 남편이랑 같이 가든지 할게.”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바꿨다.
“아니면 신랑이라도 먼저 가보라고 할게.”
통화를 끝낸 수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나를 바라봤다.
“여보.”
“응.”
“미안한데 오늘 친정 좀 가줄 수 있을까?”
수진은 정말 피곤한 모양이었다.
며칠 전 내 부탁을 거절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평소보다 훨씬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나 오늘은 진짜 좀 쉬고 싶어.”
“엄마가 저렇게 우는 것도 처음 보고.”
“자기가 가서 이야기 좀 들어줘.”
나는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 전 혼자 머릿속에 떠올렸다가 애써 지워버리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내가 직접 나에게 장모를 만나러 가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알았어.”
빈손으로 가기는 그래서 과일 바구니 하나를 준비했다.
그리고 처가로 향했다.
띵동.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뒤 안쪽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렸다.
장모가 서 있었다.
눈가가 붉었다.
술도 제법 마신 것 같았다.
나를 보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김 서방.”
장모가 내 뒤를 한번 바라봤다.
“혼자 왔어?”
“수진이는 많이 피곤하다고 해서요.”
나는 과일 바구니를 들어 보였다.
“과일 좀 드시고 기운 내시라고 가져왔어요.”
장모가 힘없이 웃었다.
“뭘 이런 걸 다 사 왔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처남 부부는 외출하고 없었다.
넓은 집 안에는 장모 혼자였다.
술병과 잔이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장모는 평소보다 상당히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울었던 흔적도 남아 있었다.
편한 홈드레스 차림이었다.
평소 단정한 모습만 보다가 그런 모습을 마주하니 조금 낯설었다.
나는 괜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장모님, 많이 드셨어요?”
“조금.”
장모가 의자에 앉으며 대답했다.
“속상해서 한잔했더니 계속 들어가네.”
나는 식탁 위의 술병과 잔을 한쪽으로 밀었다.
그리고 과일 바구니를 올려놓았다.
“술은 이제 그만 드세요.”
“수진이도 걱정하잖아요.”
장모가 과일 바구니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아이고, 이 무거운 걸 뭘 또 들고 왔대.”
그 평범한 한마디가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나는 맞은편에 앉아 장모의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처남 부부 이야기였다.
그러다가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뒤의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자식들이 모두 자기 생활을 갖게 된 뒤 자신만 혼자 멈춰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특별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저 들어줬다.
누군가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날이 있는 법이었다.
한참 이야기한 뒤 장모의 감정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장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과일이라도 깎아줄게.”
“제가 할게요.”
“됐어.”
장모가 칼과 접시를 가지러 움직였다.
그 순간 술기운 때문인지 중심을 잃었다.
몸이 휘청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장모를 붙잡았다.
“장모님.”
장모의 몸이 그대로 내 품으로 들어왔다.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서로 예상하지 못했던 거리였다.
장모도 놀랐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나 역시 바로 손을 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억눌러왔던 감정이 머릿속을 스쳤다.
장모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짧은 침묵이 오히려 더 위험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장모를 바로 세워주려고 했다.
그런데 장모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김 서방.”
목소리가 작았다.
“네.”
장모는 한동안 다음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내 가슴 쪽으로 이마를 기댔다.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평소라면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장모와 사위라는 관계가 머릿속에서 계속 경고하고 있었다.
나 역시 결혼한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바로 얼마 전 아내가 자기 엄마를 부탁한다며 나를 이곳으로 보냈다.
그런데 장모 역시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
“장모님.”
내가 조용히 불렀다.
장모가 고개를 들었다.
“우리 이러면 안 되는데.”
장모의 말인지 내 마음속의 말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 말이 마지막 경계선처럼 느껴졌다.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결국 아주 짧게 입을 맞췄다.
둘 다 놀라 바로 떨어졌다.
장모가 나를 바라봤다.
나 역시 장모를 바라봤다.
누구 하나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다시 가까워졌다.
이번에는 처음보다 오래 서로를 끌어안았다.
가족이라는 이름 뒤에 묻어두었던 감정과 각자의 외로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 같았다.
장모가 먼저 정신을 차린 듯 내 어깨를 밀었다.
숨을 고르며 말했다.
“김 서방.”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모가 방문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는 안 돼.”
그 한마디 이후 우리는 결국 가족 사이에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
그 순간만큼은 남편을 잃고 오랫동안 혼자 살아온 장모의 외로움과 아내에게 반복해서 거절당하며 쌓여 있던 나의 서운함이 서로에게 향했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한다는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이유를 붙이더라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시간이 지나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자 현실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장모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내게 기대어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남편이 그렇게 가고 나니까.”
장모가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밤마다 사람이 너무 외로운 거야.”
나는 아무 말 없이 들었다.
“아들 내외하고 같이 살면 덜 외로울 줄 알았어.”
장모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오히려 눈치만 더 보게 되더라.”
자기 집에서조차 마음 편하게 숨 쉬기 어렵다는 말이었다.
누군가에게 다시 필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고 싶었다고 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단순히 엄마나 장모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 바라봐주는 순간이 그리웠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정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의 충동적인 분위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 자리에는 외로운 중년 여성 한 사람과 복잡한 감정에 빠진 사위가 있었다.
장모가 다시 말했다.
“오늘 자네가 와줘서 고마워.”
그러더니 곧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런데.”
긴 한숨을 쉬었다.
“내 딸 남편인데.”
장모가 눈을 감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다.”
목소리가 떨렸다.
“미안해, 김 서방.”
고마움과 미안함과 죄책감이 한꺼번에 섞여 있었다.
나 역시 아무렇지 않을 수 없었다.
수진의 얼굴이 떠올랐다.
조금 전까지 집에서 쉬고 있을 아내였다.
자기 엄마가 걱정된다며 직접 나를 이곳으로 보낸 사람이었다.
나는 장모를 조용히 안았다.
그렇다고 이미 벌어진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방 안에는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서로 가까이 누워 있으면서도 조금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철커덩.
멀리서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처가는 단독주택이었다.
그래서 대문이 열리는 소리를 집 안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나와 장모는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왔나 봐.”
장모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조금 전까지의 분위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우리는 황급히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나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복도 쪽에서 인기척이 들리는 것 같았다.
장모 역시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혹시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보이는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는 눈빛이었다.
나 역시 옷을 정리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런데 방문을 열고 나가기 직전이었다.
장모가 갑자기 내 손목을 붙잡았다.
나는 돌아봤다.
장모는 한참 나를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죄책감 때문에 눈물을 흘리던 사람의 표정과는 또 달랐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김 서방.”
“네.”
“나 가끔 너무 답답하고 힘들 때.”
장모가 잠시 망설였다.
“반찬 핑계라도 대고 전화할게.”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정말 한 번의 실수로 끝내겠다는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다시 만나고 싶다는 뜻에 가까웠다.
장모가 내 손목을 놓지 않은 채 물었다.
“그때 나 보러 와줄 거지?”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오늘 단 한 번의 실수로 끝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한번 넘어버린 선을 다시 넘게 될 것인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집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수진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문밖에는 처남 부부가 돌아와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대답은 하나뿐이어야 했다.
하지만 장모는 여전히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깥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처남 부부가 돌아온 것이었다.
장모는 급히 내 손목을 놓았다.
나는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거실로 나갔다.
처남 내외가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매형, 언제 왔어요?”
“얼마 안 됐어.”
나는 최대한 평범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처남은 내가 왜 왔는지 물었다.
“수진이가 어머니 걱정된다고 한번 가보라고 해서.”
나는 미리 준비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처음 이 집에 온 이유는 그것이었다.
문제는 그 뒤에 벌어진 일이었다.
처남댁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저녁을 먹고 가라고 했다.
“매형, 온 김에 같이 먹고 가세요.”
평소라면 그러겠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집에 더 머물 자신이 없었다.
“아니야.”
나는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수진이 혼자 있어서 그냥 가봐야겠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현관을 나왔다.
문이 닫혔다.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머릿속이 멍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저 아내의 부탁을 받고 외로운 장모를 위로하러 온 사위였다.
과일 바구니 하나를 들고 초인종을 눌렀다.
그것뿐이었다.
장모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적당히 위로해주고.
집으로 돌아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지금의 나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사위가 아니었다.
장모 역시 이전과 같은 장모로만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마지막 순간 장모가 내 손목을 잡으며 했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
‘반찬 핑계라도 대고 전화할게.’
그 짧은 문장이 이상할 정도로 선명하게 반복됐다.
오늘 있었던 일이 우연한 한 번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술기운과 외로움과 순간적인 감정 때문에 벌어진 실수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묻어버리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서로 나눈 약속 때문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우리는 다시 만날 가능성을 스스로 남겨두었다.
아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처남 내외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평소보다 길게 느껴졌다.
수진은 아마 내가 자기 엄마를 잘 위로해주고 돌아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현관문을 열면 평소처럼 물어볼지도 몰랐다.
“엄마 좀 괜찮아졌어?”
나는 그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괜찮아졌다고 해야 할까.
많이 힘들어하더라고 해야 할까.
나는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수진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사람 사이에는 한번 넘어가면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가기 어려운 선이 있다는 것을.
그날 내가 처가의 초인종을 눌렀을 때까지만 해도 장모는 그저 아내의 엄마였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에는 둘만 알고 있는 비밀을 공유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비밀의 다음 장면은 장모가 언젠가 걸어올지도 모르는 전화 한 통에 달려 있었다.
반찬을 가져가라는 아주 평범한 핑계를 담은 전화 한 통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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