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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가 맺어준 병호와 미연의 인연

주소야 (1.♡.85.152) 4 126 0 0 2026.10.04

열대야가 맺어준 병호와 미연의 인연


​지난여름이었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길었던 장마가 마침내 끝나자 그동안 어디엔가 숨어 있기라도 했던 더위가 기다렸다는 듯 한꺼번에 몰려왔다.

낮 동안 달궈진 아스팔트와 건물에서는 밤이 깊어져도 뜨거운 열기가 계속해서 올라왔다.

장마가 남기고 간 습기까지 더해지면서 공기는 숨을 한번 들이마시는 것조차 답답하게 느껴질 만큼 후텁지근했다.

가만히 누워 있어도 목덜미와 등에서는 땀이 배어나왔다.

불쾌지수라는 것이 눈에 보였다면 아마 천장을 뚫고 올라갔을 것이다.

그날 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침대 위에서 몇 번이나 뒤척였다.

오른쪽으로 누웠다가 왼쪽으로 돌아눕고, 베개를 뒤집었다가 다시 일어나 물을 마셨다.

그래도 잠은 오지 않았다.

“아, 더워 죽겠네.”

결국 잠자기는 포기했다.

마침 담배도 거의 떨어져 있었다.

나는 바람이나 잠깐 쐴 겸 담배를 사러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멀리 갈 것도 아니었다.

바로 근처 가게에 다녀오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문을 잠그는 것도 귀찮았다.

‘금방 갔다 올 건데 뭐.’

그때까지만 해도 그 사소한 귀찮음 하나가 그날 밤을 완전히 뒤집어놓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정말 잠깐이었다.

담배를 사고 다시 원룸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뭐야?”

먼저 코를 찌른 것은 진한 술 냄새였다.

그리고 침대 쪽으로 시선을 돌린 순간 더욱 황당해졌다.

웬 젊은 여자가 내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이게 무슨…….”

나는 담뱃갑을 손에 든 채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못 들어온 방은 아니었다.

분명 내 방이었다.

그렇다면 저 여자가 잘못 들어온 것이었다.

잠시 후 대충 상황이 짐작됐다.

내가 사는 원룸은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건물이었는데 구조가 이상했다.

계단과 층의 위치가 묘하게 헷갈려 정신을 놓고 올라오다 보면 2층을 지나쳐 3층으로 올라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나 역시 몇 번이나 층을 착각한 적이 있었다.

아마 이 여자도 위층에 사는 모양이었다.

술에 잔뜩 취한 상태에서 자기 방이라고 생각하고 문을 열었는데 마침 내가 문까지 잠그지 않고 나간 것이다.

결국 아무것도 모르고 내 침대에 쓰러져버린 모양이었다.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아가씨.”

나는 침대 옆으로 다가갔다.

“일어나봐요.”

반응이 없었다.

“아가씨.”

어깨를 살짝 흔들어봤다.

그래도 꼼짝하지 않았다.

완전히 술에 취해 있었다.

“참나.”

깨워서 자기 방으로 올려보내려고 했는데 이것부터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처음 보는 여자의 가방을 뒤져 집 열쇠를 찾는 것도 껄끄러웠다.

괜히 나중에 이상한 오해라도 받으면 골치 아플 것 같았다.

‘조금 지나면 술 깨겠지.’

나는 결국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물었다.

후우.

한 개비가 두 개비가 되고 두 개비가 세 개비가 됐다.

그런데 침대에서 자고 있는 여자의 잠버릇도 보통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날씨가 너무 더웠다.

여자는 자면서도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답답했던지 잠결에 자기 옷을 하나씩 느슨하게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나는 괜히 시선을 돌렸다.

“대한민국 건장한 청년을 아주 시험에 들게 하는구먼.”

혼잣말을 하면서 애써 다른 생각을 했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별 의미도 없는 숫자를 머릿속으로 세며 어떻게든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려고 했다.

그러던 바로 그때였다.

“우욱…….”

침대 쪽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번개처럼 고개를 돌렸다.

“잠깐.”

“거기는 안 돼.”

하지만 이미 늦었다.

결국 여자는 내 침대 위에서 일을 저질렀다.

순간 방 안에 결코 상쾌하다고 할 수 없는 냄새가 퍼졌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아…….”

“진짜.”

곱게 자게 내버려뒀더니 내 잠자리까지 완전히 엉망으로 만들어놓았다.

갑자기 배신감 비슷한 감정까지 들었다.

결국 나도 열이 받았다.

나는 여자를 시트째 끌다시피 해서 욕실로 데려갔다.

그리고 욕실 바닥에 앉혀놓은 뒤 샤워기를 틀었다.

“물 좀 맞으면 술도 깨겠지.”

여자가 젖어서 감기에 걸릴지 어떨지는 그 순간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 역시 땀을 뻘뻘 흘리며 침대 시트를 새것으로 갈았다.

겨우 정리를 마친 뒤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이제 좀 조용해지겠지.’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욕실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굳어버렸다.

“이런.”

여자는 아직 술이 완전히 깨지 않은 모양이었다.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얼굴이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젖은 옷을 모두 벗어놓은 채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욕실에서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그 상태로 비틀비틀 침대 쪽으로 걸어왔다.

“잠깐.”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여자는 다시 침대에 누워버렸다.

그것도 내 바로 옆이었다.

‘이거 정말 큰일 났네.’

누가 이 모습을 보기라도 하면 나는 변명할 말조차 없었다.

그런데 정작 여자는 그런 내 속도 모르고 술기운 때문에 몸이 뜨거운지 차가워진 내 몸 쪽으로 바짝 붙었다.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귀엽다는 생각도 들면서 동시에 대체 어떤 남자가 이 여자를 데리고 살게 될지 걱정스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이상한 변화가 느껴졌다.

처음에는 완전히 잠든 줄 알았던 여자의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호흡도 달라졌다.

‘설마 깬 건가.’

가만히 들어보니 확실했다.

숨소리가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침을 삼키는 작은 소리도 들렸다.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이제 상황을 파악한 모양인데.’

아마 여자 역시 난감할 것이다.

눈을 떠보니 처음 보는 남자의 방이고, 자신은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벌떡 일어나 미안하다고 하고 나가기에도 민망했을 것이다.

결국 여자는 자는 척을 선택한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였다.

여자의 몸이 아주 작게 움찔했다.

하지만 눈은 뜨지 않았다.

“깨어 있죠?”

대답이 없었다.

“아가씨.”

여전히 침묵이었다.

“깬 거 알고 있어요.”

그래도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다.

“싫으면 그만할게요.”

그제야 여자의 호흡이 더욱 빨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나를 밀어내거나 자리에서 일어나지는 않았다.

나는 그녀가 분명히 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마침내 여자의 입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나는 상체를 조금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정말 싫으면 말해요.”

한동안 침묵하던 여자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기요…….”

“네.”

“저…… 아직 남자하고 제대로 해본 적 없어요.”

뜻밖의 대답이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술기운 때문인지 긴장 때문인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괜히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농담을 했다.

“괜찮아요.”

“누구나 처음은 있는 거니까.”

내 말이 우스웠는지 여자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알았어요.”

그 한마디 뒤로 방 안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하지만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여자는 술에 취해 있었고 이제야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우선 제대로 씻고 정신부터 차리자며 그녀를 욕실로 데려갔다.

욕실의 밝은 불빛 아래에서 보니 여자는 생각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아직 앳된 얼굴이 남아 있었다.

나는 샤워기를 틀어주고 그녀가 정신을 차릴 시간을 줬다.

여자는 물을 맞으면서 조금씩 술에서 깨어나는 것 같았다.

씻고 양치까지 마친 뒤 수건으로 몸을 닦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조금 전까지 술에 취해 정신없이 행동하던 것과 달리 이제는 갑자기 부끄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침대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한쪽에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나는 손짓했다.

“이리 와요.”

여자는 가만히 서 있었다.

“겁먹을 것 없어요.”

“…….”

“괜찮아요.”

그제야 여자가 아주 조금씩 다가왔다.

하지만 정말 한 걸음씩이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천천히 오면 날 새겠어요.”

그녀도 작게 웃었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여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 손을 잡았다.

나는 그녀를 침대에 앉혔다.

그리고 가볍게 입을 맞췄다.

“아…….”

여자가 다시 긴장했다.

“힘 빼요.”

“저…….”

여자가 머뭇거렸다.

“원래 아무한테나 이러는 여자 아니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지금 이 순간에만 충실하면 돼요.”

여자는 잠시 내 얼굴을 바라봤다.

조금씩 긴장이 풀렸다.

두 사람은 다시 입을 맞췄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 역시 조금씩 내 움직임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여자의 몸은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나는 서두르지 않고 그녀가 편안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의 몸에서 조금씩 힘이 빠졌다.

“무서워요.”

그녀가 솔직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천천히 할게요.”

그녀는 내 말을 듣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조금씩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그녀에게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운 듯했다.

몇 번이나 몸을 움츠렸고 나를 붙잡았다.

“아파요.”

“잠깐만요.”

나는 움직임을 멈췄다.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릴게요.”

그녀는 눈을 꼭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다시 천천히 서로에게 다가갔다.

처음의 통증과 긴장이 조금씩 가라앉으면서 그녀의 표정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숨소리가 달라졌다.

나를 붙잡고 있던 손에도 조금씩 힘이 들어갔다.

“아…….”

“이상해요.”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가 신기한 듯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의 움직임은 자연스러워졌다.

처음에는 겁을 먹었던 그녀가 어느 순간부터는 내 움직임에 맞춰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아…….”

“잠깐.”

“이상해요.”

그녀의 몸이 크게 떨렸다.

그리고 한동안 힘이 빠진 사람처럼 늘어졌다.

나는 그런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런데 조금 쉬자 다시 그녀의 체온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만해요.”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는 내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두 팔로 허리를 감싸 안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여름 밤의 시간을 잊어버렸다.

몇 분이 지났는지, 몇 시간이 지났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방 안에는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와 두 사람의 가쁜 호흡만 반복됐다.

열대야의 더위 때문인지 서로의 체온 때문인지 온몸에는 땀이 맺혔다.

그녀는 몇 번이나 지쳤다며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다가도 잠시 쉬면 다시 나를 바라봤다.

어느 순간에는 먼저 입을 맞춰오기도 했다.

처음의 수줍음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여자는 내 품에 완전히 늘어져 있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많이 힘들어요?”

“너무해요.”

“뭐가요?”

“안 아프게 한다면서.”

나는 웃었다.

“많이 아팠어요?”

“처음에는 정말 죽는 줄 알았단 말이에요.”

그녀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럼 나중에는요?”

순간 여자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몰라요.”

“정말?”

“모른다니까요.”

나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아직 서로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나는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안 물어봤네요.”

여자가 눈을 흘겼다.

“지금에서야 물어봐요, 아저씨?”

“아저씨라뇨?”

나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래 봬도 스물여덟 총각입니다.”

그녀가 풋 하고 웃었다.

“전 이미연이라고 해요.”

“이미연?”

“네.”

“나는 이병호예요.”

“병호 씨.”

처음으로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몇 시간 동안 누구보다 가까이 있었으면서 이제야 이름을 알게 된다는 사실이 우습기도 했다.

미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원래 이런 거예요?”

“뭐가요?”

“아니.”

미연이 말을 망설였다.

“결혼한 친구들 말 들어보면 보통 그렇게 오래 안 한다던데.”

말을 끝내고 나서야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는지 미연의 얼굴이 다시 빨개졌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이야기도 친구들이랑 해요?”

“몰라.”

“괜히 말했어.”

미연이 내 가슴을 가볍게 때렸다.

나는 다시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미워.”

미연이 투덜거렸다.

그 모습이 이상할 정도로 귀여웠다.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미연이 나를 바라보며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왜요?”

“또?”

나는 웃었다.

“미연 씨가 너무 귀여워서.”

“한 번만 더.”

미연의 표정이 황당하다는 듯 변했다.

“또요?”

“응.”

“나 죽어요.”

“그 정도로 안 죽어요.”

“몰라.”

미연은 얼굴을 돌렸다.

하지만 나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다시 서로를 끌어안았다.

이번에는 처음보다 훨씬 자연스러웠다.

미연 역시 내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병호 씨.”

그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조금 전까지 이름조차 몰랐던 여자였다.

그런데 어느새 몇 년을 알고 지낸 사람처럼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있었다.

몇 번이나 쉬고 다시 서로를 끌어안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미연이 갑자기 벽시계를 바라봤다.

“병호 씨.”

“응?”

“출근 안 해요?”

“출근?”

나는 멍하니 시계를 바라봤다.

7시 30분이었다.

“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벌써?”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밤이 통째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회사에 도착하면 부장이 눈을 부릅뜨고 난리를 칠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나는 부랴부랴 옷을 챙겼다.

미연도 일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몸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지 일어나는 순간 휘청했다.

“악.”

나는 급하게 미연을 붙잡았다.

“괜찮아요?”

“누구 때문에 이러는데요.”

“미안.”

결국 나는 미연을 욕실까지 데려갔다.

두 사람은 다시 씻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로 미연을 자기 방까지 데려다줬다.

역시 예상대로 같은 건물 위층이었다.

‘결국 층을 잘못 찾아온 게 맞았구나.’

그렇게 미연을 방에 데려다준 뒤 나는 회사로 뛰어갔다.

다행히 간발의 차이로 지각은 면했다.

하지만 밤을 꼬박 새운 데다 거의 잠도 자지 못한 상태였다.

하루 종일 정신이 몽롱했다.

부장의 시선이 몇 번이나 느껴졌지만 모른 척했다.

아마 부장도 열대야 때문에 잠을 설쳤는지 특별히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도 이상하게 미연이 계속 생각났다.

몸은 괜찮은지.

술은 완전히 깼는지.

아침에 제대로 쉬기는 했는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었다.

나는 거의 비몽사몽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계단을 올라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또 한번 그대로 굳었다.

“뭐야?”

방 안에는 미연이 있었다.

그것도 어제처럼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밥상을 차려놓고 얌전히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왔어요?”

나는 말없이 미연을 바라봤다.

어젯밤 내 방을 자기 방으로 착각하고 들어와 쓰러졌던 여자가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 방에 앉아 있었다.

“어떻게 들어왔어요?”

미연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문 열려 있던데요.”

나는 머리를 짚었다.

‘또 안 잠갔구나.’

그런데 미연은 웃으면서 밥을 먹으라고 했다.

나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나 자신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밥을 먹으면서 미연이 말했다.

“나 오늘 친구한테 물어봤어요.”

“뭘요?”

미연은 잠시 뜸을 들였다.

“병호 씨 이야기.”

나는 숟가락을 멈췄다.

“내 이야기를 왜 친구한테 해요?”

“그냥.”

“궁금해서.”

미연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그랬더니 친구가 그러더라고.”

“뭐라고요?”

“그런 남자 흔하지 않으니까 꽉 잡으래.”

나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그런데 미연이 한마디를 더했다.

“내가 싫으면 자기한테 소개해달래.”

“뭐?”

미연이 깔깔 웃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어젯밤 단순한 사고로 시작된 일이 아무래도 하룻밤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것을.

열대야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아 담배를 사러 잠깐 나갔다 온 것이 시작이었다.

문을 잠그지 않은 것도 우연이었다.

술에 취한 미연이 층을 착각한 것도 우연이었다.

내 침대에 쓰러져 잠든 것도 우연이었다.

그런 우연들이 하나씩 겹치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연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날 이후 미연은 정말 자주 내 방을 찾아왔다.

어느 순간부터 노크 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정도가 됐다.

나는 자유롭게 살던 내 생활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혼자 먹던 저녁을 둘이 먹는 날이 많아졌다.

늦은 밤 혼자 담배를 피우던 시간에도 미연이 옆에 있는 경우가 생겼다.

그리고 밤이 깊어지면 미연은 처음 만났던 날의 수줍었던 모습과는 또 다른 얼굴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난 자유가 좋은데.’

하지만 이미 늦은 것 같았다.

길고 긴 장마가 끝난 뒤 찾아왔던 지독한 열대야.

잠이 오지 않아 담배 한 갑을 사러 나갔던 그 짧은 외출.

그리고 문을 잠그지 않았던 단 한 번의 실수.

그날 밤 잘못 찾아온 옆방 여자 이미연은 그렇게 내 방뿐 아니라 내 일상까지 자연스럽게 들어와버렸다.

그리고 그 여름이 끝날 때까지 우리 동네의 밤은 좀처럼 조용해질 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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