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순이의 연꽃
석순이의 연꽃
진흙탕 속에서도 푸르르게 피어나는 연꽃처럼 세속의 거친 풍파 속에서도 자신만의 맑고 고결한 덕을 끝내 잃지 않았던 내 친구 석순이를 기억해 본다.
연꽃이 지닌 담담한 화려함과 티 없이 깨끗한 군자의 품성은 그녀가 걸어간 비극적이면서도 눈물겹도록 아름다웠던 삶의 궤적을 고스란히 닮아 있었다.
스물세 살의 푸르른 아가씨 시절 그녀는 사찰의 연못가에 피어난 하얀 연꽃을 바라보며 운명 같은 사랑에 모든 것을 던졌고 세상의 매서운 비난과 손가락질 속에서도 그 사랑을 굳건히 지켜내었다.
소낙비가 세차게 내리치던 외진 산길에서 예기치 않게 젊은 스님과 마주치며 시작된 인연은 거부할 수 없는 폭풍우처럼 그녀의 평온한 인생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비에 젖어 온몸에 착 달라붙은 엷은 옷자락 사이로 드러난 요염하고도 육감적인 자태는 결국 젊은 스님의 억누르던 욕정을 폭발시켰고 그날 이후 두 사람은 거부할 수 없는 짙은 사랑의 늪으로 깊숙이 빠져들었다.
가정의 축복과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뒤로한 채 젊은 스님은 절을 떠나 공사판의 거친 품팔이꾼이 되었고 석순이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채 도시의 허름하고 초라한 방 한 칸에서 어린 딸을 업고 눈물로 세월을 버텨냈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친 그녀의 등 뒤에는 꿈 많던 옛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팍팍한 삶에 찌든 초라한 아낙의 그늘만 깊게 드리워져 있어 우리의 마음을 미어지게 만들었다.
넉넉지 않은 지갑을 털어 쥐여준 돈을 사양하며 애써 눈물을 참아내던 그녀의 미소와 손사래는 오래도록 가슴속을 떠나지 않는 아린 상처로 남았다.
설상가상으로 밤늦은 공사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남편이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뺑소니 사고로 비참하게 목숨을 잃으면서 석순이의 세상은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남편을 잃은 충격에 식음을 전폐하고 실성한 사람처럼 골목 어귀에 우두커니 서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던 그녀의 애처로운 뒷모습은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 더욱 가련하게 시들어 갔다.
결국 남편을 향한 지독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이기지 못한 석순이는 사랑하는 이의 뒤를 따라 쓸쓸히 이 세상의 끈을 놓아버렸고 남겨진 네 살짜리 어린 딸은 다시 그 절의 주지 스님의 품으로 거두어져 홀연히 사라졌다.
이제 세월이 흘러 그 아이도 어쩌면 엄마의 품을 닮아 어엿한 어른으로 자라나 예전에 어머니가 거닐던 그 절의 연못가를 쓸쓸히 서성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비록 짧고 험난한 삶을 살다 갔지만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오직 순수한 사랑만을 품다간 내 친구 석순이는 언제까지나 내 가슴속에서 지지 않는 한 송이 영원한 연꽃으로 피어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