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불장난 2
지혜의 불장난 2
'98. 7. 22
오늘 오후에 또 프로포즈를 받았다. 자재부 차대리 29살.. 회사에 들어 온 뒤로 프로포즈 받은게 몇 사람이더라? 일곱? 여덟? 상대가 마음 안 상하게 거절하는 것도 무척 힘들다.
하지만 내겐 '세이크'가 있는데... 그와는 지난 봄 마지막 선을 넘고 말았 다. 대학 1년때 축제 뒷풀이마당에서 술에 취해 동아리선배한테 강제로 순 결을 잃은 후로 두 번째 남자다.
아니... 순수하게 내 마음이 내켜서 몸을 준 건 첫 번째 남자라는게 맞겠다 . 한번 선을 넘고 나니 어찌나 보채는지 귀찮을 정도이다. 나는 그 걸 하고 나면 왠지 찝찝하고 허전해서 별로인데 남자들은 왜 그걸 못해 그렇게 안달 을 할까? 그렇지만, 어쨌든 너무 살을 자주 맞대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아, 달래고 피해서 관계는 몇 번 안된다.
네 번인가? 다섯 번인가? 호호.... 그나저나 왜 모두 나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거울을 봐도 내가 미 스코리아같은 미인같지는 않은데... 특히나 사무실에서 가끔 나이 지긋한 간부들조차도 지나가는 내 몸을 뒤에서 은근히 훑어보는 느낌을 받을 때도 많다. 내가 40대 취향인가?
참, 그러고보니 며칠전 점심시간 직후에 잠시 틈을 내서 일간신문의 퍼즐을 풀고 있는데.. 문득 이상한 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더니, 뜻밖에 김실장 님이 책상너머로 나를 지긋이 쳐다보고 있어서 당황했던 기억도 난다.
분명 히 부하사원이 아닌, 여자로서의 나를 쳐다보는 눈길이었다. 아닌가? 아님 말구....
'98. 9. 26 오늘 또 부서회식이 있었다. 홍보실설립 12주년 단합대회...
1차로 식사가 끝난 다음, 나이트로 옮겼다. 오랜만에 실컷 흔들고, 중간중 간에 김실장님과 박대리한테 교대로 끌려나가 부루스도 췄다. 난 사교춤은 못춘다.
그냥 실장님과 박대리님이 끄는대로 따라 걷기만 했다. 실장님은 제법 사교 춤을 추신 것 같다. 우리 아버지도 추실까... 춤은 서툴지만, 기분은 묘했 다. 부루스라는게 한쪽 팔은 마주 잡고, 실장님의 나머지 한 손은 내 허리 에... 내 손은 실장님의 어깨에 얹은채 배꼽밑으로는 바싹 붙이고 추는 것 인 모양이다. 암만 춤을 추는 것이라지만, 두 사람의 얇은 옷 두어겹만 가 렸을 뿐 나의 가장 은밀한 부분과 실장님의 그 곳이 밀착된 상태가 아닌가
.... 진짜로 걸음을 떼던 어느 순간에는 나의 예민한 그 곳에 실장님의 불 룩한 부분이 닿는 느낌마져 전해져 와,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뒤로 뺐던 기 억도 있다. 아이... 응큼한 쉰 세대들....
'98. 10. 9
휘앙새 '세이크'와 대판 싸우고 헤어졌다. 지나고 나니 별 대수로운 것도 아닌데, 오기로 뻗대다 보니 어쩌다 크게 번져 버린 것이다. 몇 번 몸을 섞 었다고 영원한 자기 사람 취급하는 것도 못마땅하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이번엔 버릇을 고쳐 놔야지... 지가 먼저 연락해서 사과 하기 전에는 절대 용서 안해...
'98. 10. 22
오늘 인사이동이 있었다. 나는 기획실로 발령이 났다. 사실은 그 쪽 언니가 결혼한다면서 그만 둔다기에 미리 김실장님께 부탁해 두었던 것이다. 지금 있는 홍보실보다 승진이 빠르다고 해서였는데.. 부탁받은 김실장님의 표정 이 묘했다. 거절도 못하고, 그렇다고 반가운 표정은 더욱 아니고...
'98. 12. 20
00대학교 4학년인 친한 과후배를 홍보실에 아르바이트를 시켜줬다.김실장 님께 부탁드렸더니 흔쾌하게 받아주신 것이다. 또 은혜를 입었다.
'98. 12. 26
오후에 김실장님의 부탁을 받았다. 바쁜 대외비 보고서류가 있어 저녁에 워 드프로세서를 도와달라고 한다. 도움을 많이 받은 분이라 상냥하게 응했다. 야근이 끝날 무렵, 우연히 '세이크'이야기가 나와서 (김실장님도 나와의 관 계를 어느정도 아신다 ) 헤어졌다고 말씀드렸더니, 이외로 꼬치꼬치 물으신 다.
'오래 사귄걸로 아는데 괜찮으냐..' '어지간하면 참지 그랬느냐' '보고싶지 는 않으냐..' 등등...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돈다. '세이크'와 헤어진 뒤 쓸쓸한 내마음을 처음으로 위로받았기 때문인가... 그런데, 문득 뜻밖의 질 문을 하신다.
" '세이크'와 깊게 사귀었어?"
" ...... "
선뜻 대답못하고 있었더니,
"아아... 사랑한 방법말이야... 있잖아.. <아가페사랑>도 있고, <에로스사 랑>도 있고.. 어느 쪽이야? "
거짓말도 못하고 그렇다고 관계가 있었다고 하긴 뭣하고 해서 망설이는데,
"에로스?" 하신다.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얼굴이 화끈한다. 바꾸어 말하면, 실장님께 '세이크 '랑 육체관계도 맺었노라고 고백한 셈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실장님의 눈빛에 언뜻 열기같은 것이 어린다.
( 어머머!.. 내 정신 좀 봐.... )
( '세이크'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회전의자를 실장님앞으로 돌려 앉아 뒤로 등을 기대고 있었잖아.... 회사 유니폼 스커트가 무릎위 10Cm쯤 올라간 미 니스커트인데다 활동하기 좋게 통이 약간 넓은 편이어서 실장님께 허벅지 안쪽, 꽤 깊숙한 곳까지 보여드린 것 같아... 아니 어쩌면 팬티까지 보셨을 지도 몰라... )
얼른 스커트 자락을 밑으로 당기며 의자를 돌렸지만, 얼굴이 홧홧거린다. 일을 다 마치고 일어서면서 실장님께서 한번 더 위로해 주신다.
" 세월이 약이라구...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이라면 마음 강하게 먹고, 다른 데 신경쓰라구... 지혜는 예쁘니까 더 좋은 사람 생길 수도 있잖아..." 뒤에서 다정하게 어깨에 손을 얹으신다. 만약 의자를 돌려 세우셨더라면, 실장님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어버렸을지도 모르는데.. 그러지는 않 으셨다.
회사 모퉁이에서 헤어지시면서 한마디 툭 던지신다.
" 내가 10년만 젊었더라도 지혜한테 프로포즈하겠는데... 좋은 사람 생길 때까지 만이라도 내가 데이트신청하면 받아 주겠어? 안 받아 줘도 좋으니 웃지는 말구... 허허... "
그래 놓고 대답도 안 기다리고 터벅터벅 돌아서 가신다.
(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진심일까? 농담일까?.. 진담이시라면 어떻 게 해야하지? 중년의 직장상사와의 데이트? 재밌겠는데... 호호... 미쳤어 ..정말.. 노털하고 데이트라니... 아이 나도 몰라... 빨리 집에 가서 밀린 잠이나 자자... )
'98. 12. 30
망년회 회식일이다. 오늘은 우리 기획실이 아니고, 먼저 있던 홍보실 회식 인데, 직전 동료라고 날 초청해줘서 참석했다. 오랜만에 술도 먹고, 고고도 추고, 실장님과 부루스도 췄다.
그 날 저녁이후 아무 내색도 않으신다. 부 루스를 추면서 둘만의 기회에 무언가 한 마디쯤 물으실 줄 알았는데... 물 으시면 뭐라 대답해야 하나.. 고민도 했는데... 밤 11시쯤 전처럼 실장님은 먼저 들어가시고, 젊은 사원들끼리 3차로 쳐졌다. 그런데,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일어나 화장실 가는 체 하며, 혼자 쓸쓸히 걸어가 시는 실장님을 뒤쫓아 갔다.
" 실장님! "
" 응? 지혜 아냐? "
" 저.. 지난번 데이트 약속.. 아직도 유효해요? "
순간적으로 안경너머 실장님의 눈빛이 '번쩍'하는 것 같았다.
" 그러엄.. 왜 받아 줄려구? "
" 네에... 기다릴게요.. "
얼른 돌아서 뛰어와 버렸다.
( 기집애.. 미쳤어.. 정말! 어쩌려구 그러니? 너!... ) ( 누가 어쩐대... 그냥 드라이브나 하고.. 저녁이나 사주면 먹고, 오면 되지 뭐... ) ( 니 마 음대로? ) ( 실장님은 이상한 짓 하실 분은 아냐.. ) ( 너.. 실장님과 연애 할거니? ) ( 얜! 내가 뭐가 답답해서 아빠같은 유부남하고 연애한다니.. 그 냥 호기심이야.. 점잖은 직장상사가 어떻게 나오나 한번 경험해 보는...호 호... ) ( 기집애! 정말 못됐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