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산골
눈 내리는 산골
새하얀 눈이 하루 종일 내린다.
어제 저녁부터 시작된 눈발이 어느새 발목까지 쌓여서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눈이 쏟아진다면 며칠 동안은 이 외딴 산골 집에서 꼼짝없이 갇혀 지내야 할 것이 분명했다.
누나. 아빠랑 엄마는 언제 돌아오는 거얌.
17살인 누나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 곧 오시겠지.
방학이라 부모님이 없는 산골 작은 집에서 누나와 나 단둘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누나는 나보다 두 살 위로 언제나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나를 보살펴 주는 천사 같은 존재였다. 세상에 누나만큼 아름답고 따뜻한 사람은 없을 거라고 늘 생각했다.
누나. 눈 그치면 밖에 나가서 눈썰매 타자.
누나는 대답 대신 귀엽게 웃어주었다.
심심한 하루가 이어졌다. 산골이라 텔레비전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하루 종일 방 안에서 뒹굴뒹굴 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누나. 우리 레슬링 하자.
누나도 심심했는지 알았다며 두꺼운 솜이불을 깔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누나에게 힘없이 당했지만 올해는 몸에 힘이 붙어 대등하게 겨룰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올해 들어 레슬링을 더욱 자주 했다.
레슬링이라고 해봤자 서로 허리를 잡고 넘어트려 위에 올라타는 단순한 놀이였다. 시작과 동시에 우리는 서로를 붙잡고 힘을 겨뤘다. 누나가 먼저 내 다리를 걸어왔지만 나는 이미 작전을 꿰뚫고 있었다. 누나의 몸을 최대한 밀착시킨 뒤 살짝 들어 올려 힘껏 밀어버렸다.
누나가 나를 안은 채로 이불 위에 넘어졌다. 그 순간. 누나의 부드러운 입술에 내 입술이 스치듯 닿았다. 순간적으로 너무 기분이 좋았다. 누나는 놀라서 나를 떨어뜨리려 했지만 나는 놓지 않았다. 누나의 몸 위에 포개진 채 가슴이 내 가슴에 닿는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을 더 느끼고 싶었다.
그때 누나가 이상하게 여기며 두 손으로 내 머리를 잡았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쥐어뜯듯 세게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아팠다. 여자의 필살기였다. 너무 아파서 나는 잡았던 손을 놓아버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누나는 재빨리 일어나 내 뒤통수를 발로 걷어차기 시작했다. 누나의 발길질은 내 의식이 가물가물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렇게 죽는 것일까.
하얀 날개를 가진 아름다운 누나들이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몸이 가벼워지며 하늘로 떠오르는 듯했다. 그 순간 멀리서 검은 물체가 다가왔다. 점점 커지던 그것은 내 눈앞에서 멈췄다.
눈을 뜨니 누나의 주먹이 코앞에 있었다. 손가락에는 증조할머니가 남긴 옥이 박힌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별이 번쩍였다.
누나. 이러지 마 제발. 누나 살려줘.
나의 의식이 점점 사라졌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뜨자 눈앞에 하얗고 커다란 여자의 가슴이 보였다. 그 여자는 내 머리를 자신의 가슴으로 옮기더니 젖꼭지에 내 입을 물렸다. 너무 기분이 좋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익숙한 듯이 그 가슴을 빨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달콤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니 누나의 가슴에 갓난아기인 내가 안겨 젖을 빨고 있었다. 그 아이가 바로 나였다.
애기야 우유 먹어야지. 얼른 먹어.
누나가 내 머리를 강하게 가슴으로 밀어붙였다. 숨이 막혀왔다. 누나가 나를 죽이려 하는 것일까.
의식이 다시 혼미해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눈을 뜨자 맛있는 빵이 보였다. 배가 고팠다. 몸이 무의식적으로 날아올라 빵으로 향했다. 입에서 검은 대롱이 나오더니 빵을 핥아 먹기 시작했다.
오. 세상 참 편하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며 누나가 들어왔다. 누나는 파마를 한 아줌마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몸속이 고통으로 요동쳤다. 속이 부글부글 타오르는 듯했다.
누나. 살려줘. 나 죽을 것 같아.
누나는 미동도 없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마지막 힘을 다해 누나에게 다가갔다. 누나가 등 뒤에 숨기고 있던 물건으로 나를 내리쳤다. 빗맞았지만 힘없는 몸은 균형을 잃고 우유컵과 접시 사이로 떨어졌다.
우유컵에 비친 작은 죽어가는 똥파리 한 마리가 나였다.
내가 어째서 똥파리.
의식이 사라져갔다.
누나. 우리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멀리서 누나의 천둥 같은 외침이 들렸다.
이 똥파리 새끼. 약 먹고도 안 죽네. 아직도 살아있나.
땅이 울리며 무언가가 다가왔다.
누나. 다음 생에는 꼭 좋은 인연으로 만나자. 누나 행복하게 살아요.
행복했던 어린 시절 추억이 스쳐 지나갔다. 하얀 날개를 단 똥파리 천사들이 나를 안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제 천당으로 가는 건가요.
한 천사 똥파리가 귀찮다는 듯 말했다.
아니. 이번엔 니 누나가 먹게 될 돼지고기로 태어나야 돼. 아직도 넌 그녀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3천 번을 더 태어나야 한다. 이제 겨우 2천 번이야.
헉.
40만 년 전 네가 티라노사우루스였을 때 익룡인 그녀를 범했다고.
의식이 다시 혼미해졌다.
꿀꿀.
눈을 뜨자 역겨운 똥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똥바닥에 누워 있었고 수많은 새끼 돼지들이 커다란 어미 돼지의 젖꼭지에 달라붙어 난리를 치고 있었다. 배가 고파왔다.
누나와의 레슬링부터 시작된 작은 욕망이. 이렇게 끝없는 업보의 윤회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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