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거칠고 솔직한 손
그의 거칠고 솔직한 손
나는 서른 초반의 사모님이다.
결혼을 잘해서 주변에서 부러움의 시선을 받지만, 그 안에서 나는 날마다 텅 빈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처음엔 어색하고 부끄러웠던 사모님이라는 호칭이 이제는 익숙해졌고, 남편의 부하 직원들조차 내 말을 따르는 듯한 삶을 살고 있다. 비록 엄청난 부자는 아니지만, 내가 타는 차가 있고 생활비 걱정 없이 시간이 많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편안한 나날이었다.
결혼 초반에는 친구들을 자주 만났지만, 여자들 사이에 스며드는 시샘과 질투 때문에 점점 지쳐갔다. 남편의 능력에 따라 생활 수준이 올라가면서, 학교 때 친구들을 만나면 돈 자랑을 한다는 소문까지 듣게 되자 자연스럽게 그 만남을 멀리하게 되었다. 대신 남편 거래처의 사모님들, 사십 중반에서 오십 초반의 언니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세계를 맛보았다. 찜질방에서부터 나이트, 묻지마 관광, 해외 쇼핑 여행, 호빠까지. 그 언니들과 함께하면서 내가 모르던 세상의 달콤함을 하나씩 깨우쳐갔다. 이 땅은 가진 자들에게는 참으로 살 만한 곳이었다.
남편은 무엇을 했을까. 그는 개처럼 돈을 벌고, 또 개처럼 돈을 써댔다. 회사 노처녀 경리와의 오랜 관계도, 장안동 룸싸롱에 드나드는 일도 나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그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던 우리 부부는 결혼 8년 만에 서로를 무시하고 경멸하는, 남보다 못한 사이로 변해 있었다. 휴지처럼 버려진 주식, 물건처럼 취급된 중국 전자 제품, 경쟁하듯 긁어대던 카드들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를 만났다.
그는 목수였다. 베란다를 트고 마루를 잇대어 아파트를 인테리어하던 때, 내 집을 고쳐준 사람. 아침 수영을 마치고 일하는 아저씨들에게 간식을 사다 드리던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그의 손을 보았다. 손톱이 거칠고 이상하게 갈라진 그 손. 내가 빤히 바라보자 그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 직업이 원래 이래요. 솔직하거든요.” 까만 얼굴에 잔주름이 선하게 펴지는 그 미소에, 나는 몇 달 만에 오금을 찔끔 저렸다.
공사 기간 내내 나는 그를 귀찮게 했다.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이 색으로, 저 색으로. 그는 매번 “예, 사모님”만 연발하며 묵묵히 일했다. 그는 욕심이 없었다. 일한 만큼만 벌고, 더 이상 바라지 않는 사람이었다.
공사가 끝난 뒤 스물한 번의 밤이 지나도록 나는 그를 잊지 못했다. 반지르르하게 변한 집 안은 텅 비어 있었고, 마음은 더욱 무료해졌다.
그를 다시 만난 곳은 병원이었다. 나는 생명을 죽이러 간 날이었고, 그는 죽어가는 아내의 끈을 붙잡고 있었다. 그는 웃지 않았다. 마누라가 몸이 시원찮다며 담배를 물었지만, 그의 늙은 노모는 까칠하게 보였다. 그가 쌕쌕을 하나 까주어 마셨고, 나는 보답으로 남편의 명함을 건넸다.
남편은 그를 신뢰했다. 물건이 비지 않으니까. 나는 그를 신뢰했다. 그는 여자와 마누라에 대한 의리가 있었으니까.
그의 마누라는 자궁을 모두 들어내고 병치레를 계속했다. 노모는 며느리 때문에 식모살이를 했고, 중학교 다니는 딸은 속이 깊어 시집을 보내도 될 만큼 어른스러웠다.
어느 날,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입술을 달싹일 뿐 미동도 없었다. 나는 그의 검지를 입속에 넣었다. 약간의 흙맛과 짭짤한 땀 맛이 퍼졌다. “손이 짜다고…” 내가 속삭이자 그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나이에 비해 탄탄한 그의 배, 땀 냄새가 나는 그의 남성. 그는 섹스에도 솔직했다. 아마 내가 경험한 남자 중 가장 최하였지만, 그는 나를 “내가 경험한 사랑 중 제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허리춤을 올릴 때 후회했고, 어색해했으며, 마누라와 딸에게 미안해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한 번 더 나를 원했다. 나는 입으로 그를 사랑해 주었고, 그는 극도로 흥분하다가도 그런 자신을 못마땅해했다. 그런 그를 나는 더욱 좋아했다.
나는 그를 거래처 배송 기사로 옮겨 놓았다. 내가 경멸하는 남편에게 존댓말을 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싫었다. 그는 싫어했지만 세 번 거절하지 못했다.
나는 남자에게 눈물을 보이는 여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철이 든 후 처음으로 내 눈물을 본 남자였다. 그는 내가 내미는 봉투도 두말없이 받았다. 그는 돈을 쓸 줄 알았고, 나는 그에게 빛을 지는 기분이었다.
사실 나는 그의 마누라 병세가 악화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 빈자리에 내가 들어가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잘 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먼저 나를 놓을 테고, 남편이 나를 놓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나는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기가 겁났다.
우리는 월요일 점심때 만난다. 그는 일 톤 트럭을 아파트 뒷편에 세우고, 내가 차를 세워둔 지하주차장에서 전화를 한다. 으슥한 지하주차장에서 진한 키스를 나누고, 때로는 치마를 올린 채 그의 어깨에 매달려 신음을 참는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운전만 해서 근력이 떨어졌다며 놀리기도 한다.
집에 올라가 샤워를 시키고, 반찬과 재워둔 고기를 덜어주며 지난 일을 꼬치꼬치 따지기도 한다. 명선이 주라고 산 옷은 싫어했지만, 마누라 주라고 산 락앤락 반찬통 세트는 좋아했다. 그는 나를 처제 같다고 했다.
그는 내게 무엇일까. 그는 나에게 무엇이며, 앞으로 나에게 무엇이 될까. 나는 그를 생각할 때마다 참 겁 없이 잘 사는 보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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