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구원
따뜻한 구원
정말로 말 못 할 깊은 고민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 털이 전혀 없는 것. 그것이 평생의 한이었다.
남들처럼 대중목욕탕에 가서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피로를 녹이고 싶었지만, 따가운 시선이 두려워 늘 집에서 혼자 목욕을 해야 했다. 여러분, 제발 부탁이다. 백 보지랑 빠구리하면 삼 년 제수 없다는 그런 말은 내 앞에서 절대 하지 말아 달라. 이미 무모증 때문에 남들 앞에 나서지 못하는 한이 가슴을 후벼파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비수가 되어 꽂히는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나의 선천성 무모증은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다. 엄마도 나처럼 그곳에 털이 없어 대중목욕탕에 가지 못하고 늘 집에서 목욕을 했다. 차라리 나를 낳지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 생각만 하면 당장 죽고 싶어졌다. 실제로 고등학교 때 한 번 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로 끝나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새로운 삶을 찾았다. 그래서 이제는 그 남자를 더 이상 원망하지 않으려 한다.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사귀던 남자가 있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홍사덕이라는 오빠. 친구 홍옥련의 먼 친척이라며 펜팔을 시작으로 만난 인연이었다. 우리는 정신적인 사랑, 프라토닉한 사랑을 꿈꾸었다. 오빠는 서울에 살고 나는 지방에 살아서 주로 편지와 전화로 그리움을 나누었다.
오빠는 국문학과 학생이라 아름다운 시를 적어 보내주었고, 나는 밤새 그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방학 때도 공부에 방해될까 봐 참으며, 대학 합격을 기다려주었다. 수능 날, 고사장 입구에서 오빠가 현수막을 들고 서 있었다. “추미애 전국 최고 득점자!” 달려가 품에 안기고 싶었지만, 주위 사람들 때문에 참았다.
시험을 잘 치르고 집에 데려와 답을 확인하다 오빠와 처음으로 키스를 했다. 그 황홀함에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샤워를 하며 오빠가 내 보지를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백 보지잖아……” “백 보지하고 빠구리하면 삼 년 재수 없는데……” 그 말을 남기고 오빠는 쪽지만 남긴 채 사라졌다.
그날 나는 죽음을 결심했다. 수면제를 먹고 캔 맥주를 마셨다. 그러나 아빠가 발견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 위세척을 받고 살아났지만, 동네에는 내가 백 보지라는 소문이 퍼졌다. 두문불출하며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육십 가까운 혼자 사는 할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미애 학생, 나랑 이야기 좀 하자.” 바닷가로 가서 할아버지는 조용히 부탁했다. “내 평생 소원이 백 보지와 잠자리를 해보는 거야.” “백 보지 먹으면 삼 년 재수 없다던데……” 할아버지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모르는 놈들이 하는 소리야. 백 보지가 최고야.”
그날, 나는 할아버지 집으로 갔다. 할아버지는 내 옷을 조심스럽게 벗기고, 69자세로 내 보지를 빨아주었다. 쪽쪽, 쩝쩝, 후르륵. 할아버지의 혀가 내 보지를 탐하며 맛있는 소리를 냈다. 나도 고마움에 할아버지의 자지를 입에 물고 빨았다.
할아버지의 자지가 내 보지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엔 조금 아팠지만, 곧 따뜻한 쾌감이 밀려왔다. 할아버지는 땀을 뻘뻘 흘리며 힘차게 움직였다. “아~ 할아버지…… 이상해…… 몸이 하늘로 떠요……” “역시 백 보지가 달라…… 최고야……”
할아버지의 뜨거운 정액이 내 보지 깊숙이 쏟아졌다. 그 후로 우리는 자주 만났다. 할아버지는 항상 피임약을 준비해 주시고, 내 보지와 마음을 사랑으로 채워주었다. “미애야, 자주 와…… 네 덕에 회춘한다……”
백 보지라는 한이, 따뜻한 할아버지의 품에서 조금씩 녹아내렸다. 이제는 그 한을 안고도,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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